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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안정’인데… 아이돌 마케팅 나선 까닭은
기사입력 2018.04.04 15: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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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아이돌 열풍이 시중은행까지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며 고객 모시기 경쟁이 치열한 은행권이 연초 경쟁적으로 아이돌 그룹을 광고 모델로 발탁하며 ‘아이돌 대전(對戰)’에 푹 빠진 모양새다.

먼저 나선 것은 지난해 연간 순이익 1위를 기록한 KB국민은행이다. 국민은행은 국내 아이돌 그룹 최초로 미국 ‘빌보드 뮤직어워드’에서 수상한 대세 ‘방탄소년단(BTS)’과 광고모델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난 1월 발표했다. 이후 약 한 달 만인 2월 중순에는 신한은행이 아이돌 그룹 ‘워너원(Wanna One)’을 모델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워너원 역시 연말 국내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석권한 명실상부 인기 아이돌이다. 두터운 팬덤을 이끌고 있는 두 남성 아이돌 그룹이, 국내 실적 1·2위를 다투는 대형 은행들의 간판으로 나선 셈이다.

하지만 광고주가 된 은행들의 속내는 자못 복잡하다. 심난한 마음은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온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 포화된 국내 시장의 영업 한계와 뒤처진 국제 경쟁력 등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아이돌 스타를 앞세운 은행들이 과연 글로벌·도전·젊음 같은 스타들의 이미지까지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KB국민은행 광고모델 ‘방탄소년단(BTS)’, 신한은행 광고모델 ‘워너원’



▶아이돌 ‘글로벌’ ‘최고’…

은행들 지향점과 닮아

실제로 은행들의 아이돌 마케팅은 이전 광고 경향과 비교하면 ‘파격’에 가깝다. 과거엔 고객의 돈을 맡아 관리한다는 업종의 특성상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무게감 있는 중년 배우나 ‘국민 OO’의 칭호를 받을 정도로 남녀노소의 호감을 얻는 연예인들이 모델이 되곤 했다. 반면 아이돌 그룹은 주로 10·20대 여성 팬의 지지를 받는다는 점에서 은행 광고에선 자주 보기 어려운 모델이었다.

이런 관행을 깬 최근의 파격적 경향은 아이돌 마케팅이 단순한 이슈 몰이를 넘어, 은행의 경영 전략 변화와도 맞물려 있단 점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은행의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는 모바일 플랫폼이나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서비스 등을 아이돌 스타의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와 조합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다. 더불어 아이돌 문화가 과거 10대 위주의 하위문화 틀을 벗어나 글로벌 콘텐츠로 진화했다는 점도 두루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은행도 이 같은 점에 착안해 방탄소년단의 ‘예술가’적 면모를 강조했다. 국민은행 측은 “방탄소년단은 본인들만의 차별화된 장르와 음악, 특히 또래 세대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한국어 노랫말로 담아 전 세계를 무대로 끊임없이 도전해 왔다”고 강조했다.

또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등 정상급 아티스트를 제치고 2017 빌보드 뮤직어워드 ‘톱 소셜 아티스트’를 거머쥐며 글로벌 음악시장의 판도를 좌우하는 블루칩으로 급부상한 그룹”이라고 소개하면서 “방탄소년단이 지닌 ‘도전·혁신·글로벌’이라는 성공 DNA가 국민은행이 추구하는 도전정신과 맞아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방탄소년단이 지난해 11월 미국 3대 음악 시상식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자신들의 대표곡 ‘DNA’를 열창한 무대 영상은 국내외에서 큰 반향를 일으켰다. 미국인 관객들이 한글 노랫말을 따라 부르며 열광하는 모습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았다.

국민은행의 홍보 담당자는 “아이돌 그룹들은 이제 아티스트로서 한국 문화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아이돌 스타의 글로벌·혁신·도전의 이미지를 은행이 공유하고, 은행도 아티스트의 성장을 지원하는 공생 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역시 ‘도전과 열정’이라는 워너원의 이미지를 앞세웠다. 워너원은 지난해 방영된 엠넷의 공개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를 통해 데뷔한 11인조 그룹으로,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지난해 8월 데뷔 첫 무대를 2만여 좌석의 국내 최대 규모 공연장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가졌을 정도다. 이후 발표하는 곡마다 주요 음원 차트 1위를 휩쓴 것은 물론 ‘광고섭외 1순위’로 이목을 끌었다. 그룹의 활동 기간은 1년 반으로 올 연말 해산하도록 예정돼 있지만 팬덤의 충성도와 결집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워너원의 인기 비결은 무엇보다 연습생 신분이었던 이들의 ‘성공 드라마’에 기반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가수 데뷔’라는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아 살아남는다는 구성의 TV프로그램을 통해 전 연령층으로부터 인지도와 공감대를 얻게 된 것이다.

신한은행 측은 워너원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이유에 대해 “워너원 멤버들이 보여준 열정과 도전정신, 혁신적인 퍼포먼스, 최고를 향한 계획적인 연출력과 기존 성공 방식을 뛰어넘는 차별성이 디지털 리딩뱅크 신한은행과 닮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집행한 광고 예산과 비슷한 수준에서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아이돌 모델을 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은행의 얼굴이 된 아이돌 스타의 역할은 우선 각 은행 디지털 애플리케이션(앱)을 홍보하는 것이다. 워너원은 지난 2월 신한은행이 출시한 모바일 슈퍼앱 ‘신한 쏠(SOL)’ 광고와 고객 이벤트 모델로 활약하고 있다. 또 신한은행이 메인 스폰서를 맡은 프로야구 온·오프라인 광고에도 참여한다. 방탄소년단도 연간 계약에 따라 국민은행의 간편금융 디지털 플랫폼 모바일 앱 ‘KB스타뱅킹’ 영상 광고에 출연했다. 향후 사회공헌 활동과 상품 홍보에도 나설 수 있을 전망이다.

광고 영상도 세련돼졌다. 두 은행 모두 광고 영상을 TV가 아닌 모바일 앱과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먼저 공개했다. 정식 광고 영상 전에 맛보기 격의 예고편 ‘티저 영상’도 선보였다. 인기 가수의 앨범 출시 전에 프로모션 및 팬 서비스 차원에서 궁금증을 유발할 때 쓰는 티저 마케팅을 은행 광고 영상에 가미한 것이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영상을 내보낸 국민은행의 디지털 플랫폼 리브(Liiv)는 지난 2016년 출시한 지 20개월여 만인 3월 초 가입자 수 300만 명을 돌파했다. 광고 영상 공개 후엔 국내뿐 아니라 해외 팬들까지 댓글을 달며 큰 호응을 보였다. 일부 해외 팬들은 ‘KB가 무슨 뜻이냐’라고 브랜드에 호기심을 나타냈고, 국내 팬들이 ‘KB는 한국의 시중은행’이라고 설명 답글을 남기며 자연스레 홍보가 이뤄지는 모습도 나타났다.



▶모바일 앱 광고하고 브랜드 알리고…

팬들은 ‘스타 굿즈’에 관심

은행들은 장기적으로 이 같은 현상이 해외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좁은 국내 시장을 넘어 동남아·중국 등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은행들의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나라마다 은행 이름을 알리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들겠지만, 아이돌 광고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지도를 높이면 엄청난 비용 절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의 쏠은 ‘디지털 혁신’을 강조하며 기존의 은행 관련 앱 6개를 통합하고 AI 기능을 다수 도입한 야심작이었는데, 워너원을 활용한 적극적인 홍보 덕에 연착륙에 성공했다는 평이 나온다. 출시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3월 중순 현재 기존 앱 가입자의 60%에 달하는 340만 명이 신규 앱으로의 전환을 마쳤다. 신규 가입자도 24만 명으로 집계됐다.

앱 출시와 함께 선보인 ‘쏠편한선물하는적금’은 워너원 이벤트를 접목시켜 한 달 만에 5만 계좌 이상을 판매했다. 이 상품은 ‘적금을 선물한다’는 개념인데, 선물하는 사람이 적금의 신규가입 금액을 지불하면 선물 받은 사람은 6개월간 자유롭게 추가 입금이 가능한 구조다. 연 3.0%의 높은 금리를 줄 뿐 아니라, 3월 한 달간 워너원 멤버 중 1명을 선택해 응모하면 추첨을 통해 해당 멤버로부터 적금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밖에도 아이돌과 연계한 각종 이벤트·상품이 팬심을 움직이고 있다. 특히 아이돌의 흔적이 담긴 실물은 소장가치가 높아 팬들의 관심을 끈다. 신한은행은 워너원 멤버 11명과 멤버 전원의 ‘완전체’ 모습이 각각 담긴 실물 체크카드 12종을 한정판으로 선보였다.

한편 IBK기업은행도 지난 2월 말 데뷔 12년차 아이돌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GD)과 컬래버레이션으로 10만 장 한정 ‘GD 카드’를 출시한 바 있다.
이 카드는 지드래곤이 직접 디자인해 화제를 모았다. 카드 앞면에는 ‘ALL ACCESS’(올 액세스·어디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지드래곤이 직접 ‘팬들과 어디든 함께 가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것. 이에 호응해 출시 20일 만에 5만여 좌가 판매되며 젊은 팬층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정주원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1호 (2018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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