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구효서의 유념유상] 섣달에 부쳐
기사입력 2017.11.30 18:04:54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섣달의 시작은 눈이었다. 첫눈이 언제 내리든 눈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달은 12월이었다. 눈이 내리면 누구나 기뻐했다. 개마저 겅둥겅둥 뛰었다. 호랑가시나무에도, 시베리아송에도 눈꽃송이가 내려앉았다. 먼 곳에서 종소리와 캐럴이 들려 왔다. 온밤 내 내린 눈이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었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눈썰매를 타고 눈을 먹었다. 눈을 빵처럼 뭉쳐 사과처럼 깨물었다. 눈 녹인 물로 김치를 담그고 약을 달였다.

섣달의 긴 밤을 술래잡기로 보냈다. 두 편으로 짜서 한 편은 숨고 한 편은 찾았다. 숨는 것도 찾는 것도 재미있었다. 달 때문에 어둡지 않았고 달이 없으면 눈 때문에라도 어둡지 않았다. 남의 집 외양간에도 숨고 수숫단에 숨고 굴뚝 뒤에도 숨었다.

어느 날은 이 집 저 집 돌며 새를 잡았다. 서까래 끝과 처마가 만나는 곳. 푹신한 초가지붕의 끝자락이기도 한 그곳에 애들 손 하나 들어갈 만한 구멍이 나 있곤 했다. 겨울새들이 이엉 사이를 파고들어 잠을 자는 곳이었다. 크고 힘 센 아이가 작고 가벼운 아이를 무등 태웠다. 무등 탄 아이는 구멍 안으로 조심스레 팔뚝을 집어넣었다. 손끝에 따뜻하고 보드라운 낌새가 느껴지면 움켜쥐었다. 자다 놀란 새의 심장박동이 손아귀에 전해졌다. 털을 뽑고 구워서 소금에 찍어 먹었다. 한 번 맛보면 또 새를 잡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으나 매일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동짓날 지나고 세 번째 닥치는 양의 날에는 마음껏 잡았지만 그 밖의 날에는 잡지 않거나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몰래 잡았다.

그렇게 섣달의 날들을 보내다 보면 그믐이 닥쳤다. 섣달의 처음이 눈이라면 마지막은 그믐밤의 버티기인 것이다. 섣달의 마지막 날이면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이기도 한 섣달그믐. 그날은 세 살 어린 아이에게도 액막이 술을 먹였다. 한 모금에도 깊이 골아 떨어졌다. 어찌 보면 아이들이 수세(守歲)를 하기에는 한 모금의 술이 나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잠을 자지 않고 그믐밤을 새우는 것을 수세라고 했는데 잠을 자 버리면 눈썹이 온통 하얗게 센다고 하여 아이들은 겁을 먹었다. 낮술 한 모금 먹고 충분히 잔 뒤 밤에는 이를 악물고 잠과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 어른들은 잡귀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집안 곳곳을 등잔불과 촛불과 관솔불로 환히 밝혔다. 신발이라는 신발은 모두 엎어 놓았다. 야광귀신이 와서 신어보고 맞으면 가져가 버린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불빛으로 집안은 잔칫날처럼 환했으나 어딘가 으스스한 그믐밤이었다. 아이들은 잠과 싸우면서 귀신을 두려워하며 조청 바른 가래떡을 야금야금 먹었다. 세상에 그토록 긴 밤은 없었다.

그믐밤이 길었던 만큼, 그리고 긴 밤을 뜬 눈으로 지난하게 새웠던 만큼 희붐하게 밝아오는 새해 첫날은 다른 아침과 달랐다. 비로소 기다리고 기다리던 반갑고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귀신과 조청, 두려움과 달콤함, 졸음과 설렘이 가득하던 섣달그믐의 풍경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섣달그믐과 새해 새날은 아이돌의 군무로 마무리하고 아이돌의 군무로 다시 시작한다.

부엌의 조왕신에게 불을 밝혀 예를 올리고 야광귀신과 눈썹 셀 것을 두려워하던 풍속이 아이돌의 노래와 춤으로 한 해를 닫고 여는 축제보다 썩 나을 리는 없다.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때를 지나온 사람들일 뿐. 그때를 모르는 세대들은 어째서 그것이 좋았는지를 알지 못하며, 다만 책에서 배우고 전통과 풍습이라는 낱말에 밑줄을 그으며 ‘교과적으로 이해’할 뿐이다.

물론 눈을 꾹꾹 뭉쳐 먹어도 탈이 없었으니 그런 건 그때가 좋긴 좋았다. 남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 밤 술래잡기를 해도 의심받지 않았던 것도 좋았다. 어째서 하루만 새 잡기를 허용했을까 생각하니 거기에도 나름 좋은 이유가 숨어 있는 것 같다. 고기가 흔치 않던 시절, 새라도 잡아먹게 하되 남획은 안 된다는 뜻 아니었을까. 그러나 어린 아이에게까지 술을 먹이고 세상이 온통 액운과 귀신들로 가득한 것처럼 겁주던 것조차 좋다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되물을지도 모른다. 겁을 주다니? 풍습이 그러했을 뿐이지 겁주려던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때 어른의 말을 그대로 믿고 두려워했던 아이들에게는 그믐밤이란 것이 풍습도 은유도 아닌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누군가는 되물을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그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듯이 그믐밤의 귀신도 그 귀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겠느냐고. 사람은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그믐밤의 풍경은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게 아니었겠느냐고.

한 발 더 나아가 그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이른바 한국식 근대화 과정에서 미신 타파라는 명목으로 전통적인 풍속과 정서마저 무분별하게 타파해 버림으로써 창조와 창작의 원천인 판타지적 상상력까지 고갈시킨 것은 아니었겠느냐고.

귀담아 들을 만한 말이다. 나도 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다.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의 근대화가 과학이 아닌 과학인 척하는 과학이 행세함으로써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출발한 근대화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똑같이, 전통이나 옛 풍습에도 당시 주권자의 전근대적인 통치술이 깊게 깔려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라거나 옛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옛것을 무분별하게 타파해 버리는 것만큼이나 무분별한 작정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잘 분별했어야 제대로 된 근대화와 민주화가 가능하였겠듯이 옛것이라도 잘 분별해야 전통과 풍습에 대한 우리의 추억이 아름다울 수 있으며 창조적 상상력의 멋진 판타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섣달의 마지막은 그믐밤이라고 했지만, 섣달의 진정한 마지막은 설이 아닐까. 섣달의 원래 말이 설달이기도 하니까. 술가락이 숟가락이 되는 언어적 원리로 설달이 섣달이 된 게 아니던가. 그러니까 섣달은 설이 있는 달이라는 뜻이다. 마지막이 처음이 되는 달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지막이 다시 새로운 처음이 되려면 실패와 불찰, 무엇보다 무분별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다짐이 필요할 것이다. 그럴 수 없다면 섣달은 우리에게 설을 내어주지 않을지도.

편집자주 구효서 작가의 ‘유념유상’은 12월호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됩니다. 2018년 1월호에는 이순원 작가의 ‘마음산책’이 시작됩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7호 (2017년 1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춤한 은행주, 금리인상 타고 내년엔 오를까

‘환골탈태’ 아이폰 X…비싼 출고가에 사? 말아?

[구효서의 유념유상] 섣달에 부쳐

고수익 투자 VS 고위험 폭탄 ‘양날의 검’ P2P대출 3가지 투자 Tip

단종되기 전에 만들어야 할 ‘혜자’카드 7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