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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땅콩 샌드위치 땅콩 샌드위치
기사입력 2017.10.11 11: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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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플 때는 식빵에 땅콩버터만 발라 먹어도 꿀맛이다. 너무 간단해서 요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 우리가 땅콩 샌드위치를 먹게 되기까지 보통 험난한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다. 다음은 땅콩 샌드위치가 우리 입에 들어오기까지의 우여곡절 사연인데 내용을 보면 세상에는 ‘뻘짓’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앞으로 미국의 모든 빵 공장과 식품점, 제과점에서는 빵을 덩어리 형태로 팔아야지 가지런히 잘라서 판매할 수 없다. 이 규정은 1943년 1월 18일부터 적용된다.”

1943년 새해 벽두부터 클라우드 위카드 미국 농무부 장관이 뜬금없는 발표를 했다. 반듯하게 자른 식빵은 만들지도 팔지도 말라는 것이다. 왜 이런 엉뚱한 행정규제를 발표했을까.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1943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절정으로 치닫던 때였고, 위카드 농무부 장관은 전시식품청(War Food Administration) 청장을 겸직하고 있었다. 전시 국민이 먹을 식량을 관리하는 책임자다. 자른 식빵의 판매를 금지한 이유는 전쟁 물자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빵을 비닐로 포장하지만 예전에는 기름종이에 싸서 팔았다. 때문에 빵을 잘라서 포장하면 덩어리 포장보다 더 빨리 부패하기에 더 두꺼운 기름종이를 사용해야 하고 그만큼 군수물자 부족을 초래한다는 논리다. 포장지도 많이 들어가고 운송도 불편하니 비상시국에 불필요하게 빵을 잘라 팔지 말라는 것이다.

이유는 또 있었다. 전시에는 쇳조각 하나도 아쉽다. 쇳덩어리는 모두 무기 제조에 사용해야 하니 식빵 만드는 빵 절단기의 쇠를 아껴 군수품 공장으로 보내자는 것이다. 또 빵을 자르면 같은 크기의 빵이라도 밀가루가 더 많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덩어리로 먹을 때보다 빵을 더 먹게 되니 밀가루 소비는 물론이고 전시 물가상승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얼마 전만 해도 빵은 덩어리 채 먹었을 뿐, 반듯하게 잘라 먹지 않았으니 전쟁 중에 자원을 낭비하면서까지 식빵을 잘라 먹을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빵 자르는 기계가 상업화된 해는 1928년이다. 1943년 기준으로 불과 15년 전이었다. 그러니 옛날처럼 빵을 자르지 말고 통째로 먹으라는 것이었는데 전시라는 핑계로 갖가지 이유를 들어 자른 식빵 하나에까지 행정규제를 펼쳤다.

빵이 주식인 서양에서 기계를 이용해 일정 크기로 반듯하게 자른 식빵이 불러온 일상생활의 변화는 혁명적이었다. 그래서 “자른 식빵 이후 최고의 발명품(The Greatest Thing Since Sliced Bread)”이라는 영어 숙어가 생겼을 정도다. 무엇보다 가정주부의 일손이 줄었다. 전에는 빵을 사다 식구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놓는 것도 하루 종일 걸리는 가사 노동이었다. 식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바쁜 아침 시간에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고 출근하거나, 아이가 학교 갈 때 땅콩 잼을 바른 샌드위치 도시락을 싸 갔다. 빵에 바르는 땅콩버터와 과일 잼 소비도 크게 늘었다. 이렇게 편리해졌는데 갑자기 정부에서 자른 빵 판매를 금지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시민들, 특히 주부들의 반발이 심했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불필요한 규제고 지나친 일상생활의 간섭이라는 것이다.

전시 배급제도 등 정부 통제를 잘 따랐던 미국 시민이지만 자른 식빵 판매금지 조치에 대해서는 너무하다고 여겼는지 언론에 비판의 편지가 쇄도했다. 심지어 뉴욕 시당국도 반발해 예외조치를 발표했다. 뉴욕 시장이 기존의 빵 자르는 기계를 사용 중인 제과점에서는 종전처럼 빵을 잘라서 판매해도 좋다고 발표했다. 있는 장비는 그대로 사용해 시민에게 불편을 주지 말자는 것이다. 이번에는 전시식품청에서 반발했다. 규정대로 빵 자르는 기계를 사용하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기존 업체라고 빵 절단기를 그대로 쓰면 사용 못 하는 신규 업체에 대해 불공정 거래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갑론을박 논란 끝에 자른 빵 판매금지조치는 발표 세 달 후인 1943년 3월 9일 폐지됐다. 전시식품청이 백기를 들면서 막을 내렸다. 농무부 장관 겸 전시식품청 청장이 폐지 이유를 직접 읽었다.

“자른 빵 판매금지 조치는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또한 빵 포장용지가 충분히 확보되었기에 금지 조치를 철폐한다.” 하마터면 식빵의 형태가 지금과 많이 달라질 뻔했다. 식빵에 발라 먹는 땅콩의 역사에도 상식을 뛰어넘는 뜻밖의 사실들이 넘쳐난다. 지금은 땅콩이 맛있는 영양 간식이고 요리 재료지만 예전에는 노예의 음식이었다. 땅콩이 세계로 퍼진 과정부터 노예와 관련 있다. 브라질이 원산지인 땅콩은 포르투갈 노예무역상이 중남미에 팔 흑인에게 먹일 음식 값을 아끼려고 남미의 옥수수와 땅콩을 아프리카에 심으면서 세상에 퍼졌다.

남미에서 아프리카로 전해진 땅콩은 지구 한 바퀴를 돌아 18세기 무렵 북미에 전해졌다. 미국 남부의 농업발달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를 들여오며 땅콩도 함께 전해졌다. 백인 농장주가 흑인의 식량으로 땅콩을 대량재배하면서 미국에 땅콩이 퍼졌다. 이런 이유 때문에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땅콩은 환영받는 음식이 아니었다. 가난한 흑인이 먹는 싸구려 식품이었다. 땅콩은 노예음식에서 출발했지만 땅콩버터는 환자식에서 비롯됐다. 그것도 치아가 부실해 고기를 씹지 못하는 환자용 대용식이었다. 19세기 후반, 땅콩의 영양가에 주목한 미국의 의사와 발명가들이 땅콩 가공 식품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땅콩버터다. 세인트루이스에서 개업한 스트라우브라는 치과의사가 먼저 땅콩을 갈아 죽처럼 만들었다. 치아가 부실한 환자용 영양식이었다. 그리고 스트라우브 박사의 특허를 사들인 조지 바이어라는 식품업자가 땅콩죽을 발전시켜 땅콩버터를 만들었다. 역시 치과 환자용 영양식이라고 광고했다.

19세기가 끝날 무렵인 1897년 또 다른 의사가 환자용 땅콩버터를 개발했다. 미시간주에서 요양병원을 운영하던 켈로그 박사다. 치과용이 아닌 요양원 환자용이었는데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던 켈로그 박사는 환자에게도 채식을 권했고 그래서 고기 대신 먹도록 만든 고열량 음식이 땅콩버터였다. 참고로 켈로그 박사가 개발한 요양원 환자용 채식 중심 식품을 동생이 사업화한 것이 지금의 글로벌 식품회사인 켈로그다. 초기 땅콩버터는 환자용 음식이었기에 널리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게다가 흑인 음식이었던 땅콩과 달리 가공식품인 초창기 땅콩버터는 가격이 비쌌다. 그런데 고열량 땅콩버터를 미국 국방부에서 주목했다. 전쟁터에서 고기를 쉽게 먹을 수 없는 야전의 병사들에게 고기 대용식으로 땅콩버터가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땅콩이 하루 종일 육체노동을 하는 노예의 식품이었던 만큼 에너지 소모가 많은 야전의 병사들에게도 충분한 칼로리를 공급할 수 있는 대용품이 됐다. 실제 열량만 놓고 따져보면 100g당 땅콩의 열량은 569kcal인 반면에 소고기는 218kcal, 돼지고기는 236kcal로 고기보다도 두 배가량 높다. 그리하여 미군 병참사령부에서 땅콩버터를 전투식량 메뉴로 채택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932년 시험적으로 기병대 비상식량으로 채택했다가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직전인 1941년 6월, 비상 전투식량인 D레이션에 땅콩버터를 포함시켰다. 저렴한 가격에 칼로리도 높아 고기 대체품으로 적합했기 때문이다. 땅콩버터가 전투식량에 포함된 첫해인 1941년, 미국 군수업체는 월 20만 개를 생산했다가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이듬해부터는 월 100만 개씩 생산했다. 식빵에 땅콩버터와 과일 잼을 발라 먹는 메뉴가 병사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끓었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제대를 하거나 휴가를 나와서도 식빵에 땅콩버터를 바른 샌드위치를 찾았고, 그 여파로 민간 가정에서도 땅콩버터가 널리 퍼졌다.
전쟁 중 귀한 고기 대신에 먹을 수 있는 고열량 식품인 데다 값도 싸고 맛도 좋으면서 샌드위치를 만들기에 편했기 때문이다. 편하게 먹는 땅콩 샌드위치지만 식빵이나 땅콩이나 땅콩버터나 참으로 험난한 과정을 거쳐 우리 입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욕망의 군상을 볼 수 있는데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못된 짓을 하는 상인이나 헛짓거리 하는 정치인은 꼭 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창간 7주년 특집호·제85호 (2017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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