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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라면의 정체와 뿌리 그리고 한·중·일 라면 삼국지
기사입력 2017.09.01 11: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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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라면 소비량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연간 약 72개를 먹는다니까 국민 한 사람이 5일에 한 개 꼴로 라면을 먹는다는 말이 되는데 여기에 라면 못 먹는 갓난아이를 빼고 계산하면 훨씬 더 자주 먹는다는 소리다. 이렇게 많이 먹는 라면의 역사,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간과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우리가 먹는 라면의 뿌리는 일본의 라멘(ラメン)이다. 그리고 그 기원은 중국 라미엔(拉麵)으로 알려져 있는데, 라미엔이란 밀반죽을 손으로 잡아서 늘린 국수, 다시 말해 수타면이라고 한다. 수타면인 라미엔이 일본으로 건너와 라멘으로 변했고, 우리는 일본의 인스턴트 라멘 제조기술을 도입해 한국의 라면으로 발전시키면서 이제는 즉석 라면 수출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렇다면 발음은 달라도 이름과 뿌리는 같으니 세 나라 라면이 모두 비슷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한중일 라면은 닮은꼴이 거의 없다. 이유는 라면의 개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라면은 즉석에서 끓여 먹는 인스턴트 라면이 전부다. 반면 일본은 인스턴트 라멘도 라멘의 한 종류일 뿐 라멘이라고 하면 일본식 국수인 생 라멘을 의미한다. 중국 역시 인스턴트 라면을 많이 먹지만 보통 라미엔이라고 하면 전통 국수인 수타면을 뜻하고 그중에서도 일반적으로 소고기 국수인 우육면(牛肉麵)을 말한다.

이렇게 한국의 라면, 일본의 라멘, 중국의 라미엔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념이 다르다. 물론 인스턴트 라면으로만 국한해서 말한다면 세 나라 모두 생김새가 비슷하긴 하지만 맛까지 따지면 역시 한·중·일의 즉석 라면도 상당히 차이를 보인다. 라면은 뿌리가 같다면서 한·중·일 라면은 왜 이렇게 다른 모습일까.

역사와 문화가 다르니 삼국의 라면 변천사 역시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각 나라 라면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된 데는 입맛 차이 이상의 경제적,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인데, 한·중·일 라면의 발전과정에서 세 나라의 특성을 찾아 볼 수 있는 것 같아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먼저 일본 라멘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고 복잡한 과정이 있지만 최대한 단순화시켜 보면 20세기를 전후해 요코하마의 차이나타운인 난킹마치(南京町)에서 발달한 중국 국수, 남경소바(南京そば)를 그 뿌리로 보고 있다.

라멘의 기원을 그 이전까지로 거슬러 거론하기도 하지만 중국 국수가 일본에 전해진 과정을 말하는 것일 뿐이고 라멘의 기원과 직접적으로 관련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말하자면 우리의 짜장면처럼 근대 일본에서 퍼진 중국 국수가 라멘의 출발점인데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일본 라멘은 중국 음식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일본에 라멘의 원조가 되는 국수가 빠르게 펴져 나가기 시작했다.

패전 후의 일본은 전쟁 후유증으로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린 시기다. 무려 1000만 명이 영양실조에 시달린 시기고 심지어 법원 판사 중에도 굶어 죽은 사람이 나와 뉴스가 됐을 정도였다. 이렇게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던 일본인에게 다시마 국물로 끓여낸 일본 국수인 메밀 소바와 우동 대신 돼지 뼈로 우려낸 육수에 미국의 원조 밀가루로 만든 값싼 중국식 국수, 라멘은 허기를 메워 줄 안성맞춤의 영양식이었다.

이때부터 라멘은 일본의 중국 음식점에서 벗어나 포장마차 음식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는데 따지고 보면 예전 우리 짜장면이 중국집에서 빠져나와 분식점으로 퍼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 과정에서 1958년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멘이 만들어졌고, 이어 1980~1990년대 일본의 지방화시대에 맞춰 지역별로 특성을 살린 다양한 라멘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제는 아예 일본의 국민 국수로 탈바꿈했다.

라멘 이름의 변천 과정에서도 라멘이 일본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며 발달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라멘의 뿌리가 되는 남경 소바는 일본에서 차이나타운을 뜻하는 난킹마치, 즉 남경가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하지만 일본이 중국 대륙을 침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아시아에서 전쟁을 벌였던 제국주의 시절에는 남경 소바에서 지나 소바(支那そば)로 이름이 바뀌었다. 중국을 얕잡아 보는 이름이었는데 그런 만큼 지나 소바라는 국수의 위상이 어떠했을지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2차 대전 패전 이후에도 또 이름이 바뀐다. 중국 정부의 항의로 ‘지나’라는 표현 사용이 금지되면서 중화 소바(中華そば)가 됐다가 1960년대 이후, 인스턴트 라멘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라멘이라는 이름과 함께 일본 국수로 정착했다. 그러면 중국 라미엔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중국식 국수가 일본 라멘의 뿌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중국의 라미엔과 일본 라멘과의 관계는 분명치 않고,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중국 라미엔은 잡아당길 랍(拉)자를 쓰는 만큼 밀반죽을 손으로 잡아 늘리는 수타면이다. 주로 산시성과 간수성을 비롯한 서북부 지방에서 발달한 국수로 가장 유명한 것이 간수성의 란저우 라미엔(蘭州 拉麵)이다. 이 국수는 소고기 국수라는 런저우 우육면으로 널리 알려진 국수다. 중국 서북부를 비롯해 란저우 라면이 유명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먼저 면 종류가 다양한 중국에서 손으로 뽑는 수타면인 라미엔은 별다른 특징이 될 수 없기에 다른 지역 라미엔은 별로 유명세를 타지 못했다. 반면 위구르족과 회족이 많이 사는 서북부의 라미엔은 이슬람 전통이 강한 만큼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 국수가 발달했고, 덕분에 중국의 다른 국수와는 확실하게 차별화가 됐다. 하지만 라미엔, 즉 서북부의 소고기 국수도 처음에는 지역 명물 국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개혁개방으로 중국에서 여행과 거주 이전의 자유가 생겼고 경제발전으로 돼지고기 일변도에서 다양한 음식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1990년대 이후 소고기 국수인 라미엔이 중국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중국은 지금 세계 최대의 인스턴트 라면 소비국이다. 그런데 중국 즉석 라면의 특징 중 하나는 대체적으로 소고기 국수인 우육면이 주류를 이룬다.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 중국 음식문화에 비춰보면 상당히 특이한 점인데 중국에서 전통 라미엔이 퍼지게 된 과정과 관련이 있고, 그 영향을 받아 인스턴트 라면까지도 소고기 국수가 대세를 이루게 됐다. 한국은 알려진 것처럼 1963년에 일본 인스턴트 라멘의 제조기술을 도입하면서 라면이 발달했다. 식량자급률이 60%에 불과했던 시절, 라면은 식량난 해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고 서민들의 한 끼 해결에 큰 도움이 됐다. 이런 배경 속에서 한국 라면은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오직 인스턴트 라면 발달에 주력한 결과 이제는 한류 열풍을 타고 세계 100개 나라에 수출하는 효자 상품이 됐다.

한·중·일 라면은 이렇게 세 나라 모두 궁핍했던 시절, 서민의 식량난을 해결하면서 그 나라 상황에 맞춰 독특하게 발전해 왔고, 이제는 각자의 시장에서 벗어나 아시아 혹은 세계 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라면 삼국지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중일 라면의 경쟁력은 무엇이고 앞으로 라면 삼국지는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까. 일본 라멘의 경쟁력은 중국에서 전해진 국수를 독자적인 일본 라멘으로 발전시키며 인스턴트 라멘을 최초로 개발한 창의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극심한 변화와 경쟁을 통해 지역별로 또 종류별로 엄청나게 다양한 라멘을 만들어내면서 지금도 일본은 물론 인스턴트 라멘과 함께 일본 전통 라멘으로 아시아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반면 중국은 라면이라는 이름의 시조일지는 몰라도 라면 시장에서 만큼은 즉석 라면이 됐건 전통 국수가 됐건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 덕분에 소고기 국수, 라미엔이라는 로컬 국수 하나만으로도 중국 시장은 물론 홍콩과, 타이완, 동남아 시장까지 장악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한국과 일본에도 중국 소고기 국수가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백지상태에서 기술도입으로 발전시킨 인스턴트 라면을 특화하면서 이제 인스턴트 라면 제조 기술만큼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창의력의 일본, 시장의 중국, 특화된 기술의 한국 중 앞으로 라면 삼국지의 주도권을 누가 잡을 수 있을까. 그리고 삼국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전략은 과연 무엇일까. 라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4호 (2017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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