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득 2000만원’이 재테크 복병으로 떠올랐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연 2000만원인 데다, 지난해 9월 국민건강보험법이 개정되면서 연 소득 2000만원이 넘으면 건강보험료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매달 10만원 이상의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 하고, 주택이나 자동차 같은 다른 재산가치까지 건보료 산정에 반영된다. 별다른 수입이 없는 이자생활자와 노후연금족들은 예상치 못한 지출에 허리띠를 졸라매게 생겼다며 울상이다.
연금소득만으로 연 2000만원 기준이 넘을 것 같다는 50대 이 모 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씨는 회사를 그만둔 후 직장에 다니는 자녀 피부양자로 등록하려 했지만 지역가입자로 전환될 것이 확실해졌다.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비과세되는 연금을 준비해뒀을 텐데 생각지 못한 복병을 만났다”면서 “앞으로 소득 기준이 더 내려갈 예정이라고 해서 지금이라도 비과세 상품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평생 모은 소득을 정기예금에 넣고 이자로 생활하는 오 모 씨도 지역가입자 전환 후 보험료가 얼마나 나올지 걱정하고 있다. 그는 “저금리 상황에서는 원금을 까먹으면서 겨우 버텼는데, 작년 들어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수익이 쏠쏠하긴 하다. 수입이 늘었으니 건보료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구체적으로 얼마가 나올지 모르니 돈 쓰기가 무섭다”고 했다.
올해 50만 명 건보료 피부양자 탈락
금융소득종합과세란 이자나 배당 같은 금융소득이 연간 2000만원을 넘을 경우, 초과 금융소득과 다른 소득을 합산해 ‘소득세 누진세율’로 과세하는 제도를 말한다. 통상 개인 금융소득이 20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분리과세로 납세의무가 종결된다. 분리과세란 금융소득을 다른 근로·사업소득과 합산하지 않고, 금융소득에 대해서만 따로 분리해 과세한다는 것이다. 통상 2000만원 이하 금융소득에 대해서는 14%의 소득세율(지방세 포함 15.4%)로 금융기관에서 원천징수되고 더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2000만원을 초과하는 금융소득은 다른 소득과 합산해 소득세 누진세율을 적용받는다. 즉 14%의 분리과세 세율과 소득세 누진세율 차이만큼을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것이다.
기존에 자녀 등 다른 가족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던 사람들도, 연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건보료를 내야 한다. 건강보험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일 기준으로 피부양자에서 탈락한 사람은 50만5449명에 달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3월 추산한 27만3000명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이들은 올 1월부터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어 가구당 월평균 10만5000원을 내고 있다. 올해 건강보험료율은 7.09%로, 지난해 6.99%에 비해 올랐다.
특히 작년 하반기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이자소득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이들이 훨씬 늘어난다는 의미다. 은행 정기예금에 2억원을 맡긴 경우 재작년까지만 해도 예금금리가 연 2% 수준이어서 세전 이자소득이 400만원이었지만, 작년부터 예금금리가 연 4~5%대로 오르면서 올해 이자소득만 1000만원이 넘게 된다. 다른 연금소득이나 배당소득을 합쳐 2000만원을 초과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금리 급등으로 본의 아니게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되는 경우가 늘면서 절세 상담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연금 많은 공무원·퇴직자들 울상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건보료 부담은 얼마나 될까. 은퇴 후 다른 수입 없이 이자소득만으로 연 2500만원을 얻는 60대 A씨의 경우,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매달 건보료로 약 16만7000원을 내야 한다. 1년이면 200만원이 넘는 돈이다. 역시 은퇴 후 매년 국민연금 636만원과 배당소득 2000만원으로 생활하는 60대 B씨도 매달 약 15만4000원을 건보료로 내야 한다. 이 계산에서 국민연금 액수는 지난해 10월 기준 월평균 수령액인 53만원을 연간 수령액으로 추산한 것으로, 실제로는 연금소득만으로도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되는 경우가 많다.
주택이나 자동차 같은 다른 재산이 있으면 건보료는 더 올라간다. 직장인은 월급소득에만 건보료를 내지만, 지역가입자는 금융소득 외에 다른 재산까지 계산해 반영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더 크다.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에 대해서는 직장가입자와 동일한 요율을 적용받지만 보유한 자동차 가격과 토지, 주택 등 재산금액에 따라 점수를 매긴 후 각 점수당 208.4원을 곱해 합산한다. 만약 지역가입자가 매년 2000만원의 연금소득을 얻고 과세표준액이 5억원인 주택(공시가격 약 8억원)을 소유하고 있다면, 재산점수가 785점으로 산정돼 매달 납부해야 할 건보료는 약 25만1000원으로 늘어난다.
장지인 NH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세무전문위원은 “기존 피부양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인원 중에는 공무원이나 퇴직자처럼 연금소득만으로 2000만원을 넘긴 사례가 가장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기준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피부양자 박탈을 따질 때에는 ‘연금소득 전액’을 기준으로 판단하지만, 건보료 산출 때는 연금수령액의 약 50%만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피부양자에서 탈락하는 사람과 건강보험료 부담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건보공단의 ‘2022년 상반기 건강·장기요양보험 주요 통계’에 따르면, 피부양자는 2018년 1950만 명, 2019년 1910만 명, 2020년 1861만 명, 2021년 1809만 명 등으로 계속 줄었다. 2022년 11월 기준으로는 1750만 명으로 1700만 명 선까지 하락했다. 5년 사이에 200만 명이 감소한 셈인데, 최근 고금리 기조로 올해와 내년에는 탈락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추가소득 2천만원 이상 직장인 56만 명
‘2000만원 허들’에 걸려 건보료를 추가로 내는 직장인들도 많다. 직장에 다니면서 연간 배당소득 2500만원 얻는 30대 신 모 씨의 경우, 매달 약 3만3000원을 추가로 납부한다. 신 씨처럼 월급 이외에 은행 이자나 주식 배당, 임대 수입, 부업 등으로 얻는 추가소득이 연간 2000만원이 넘는 직장인은 5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실이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금융소득과 임대소득 등으로 연 2000만원(월평균 167만원) 이상을 벌어 이른바 ‘소득월액 보험료’를 추가로 내는 직장 가입자는 56만3491명이었다. 작년 10월 말 기준 건보료를 내는 전체 직장 가입자가 1962만4000명임을 감안하면, 직장인 100명 중 3명꼴(2.87%)로 건보료를 추가로 내고 있다는 의미다.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는 ‘재테크 달인’ 직장인은 추가 건보료(소득월액 보험료)로 월평균 20만원(19만9372원)가량을 내고 있다.
현재 건보료 피부양자 자격 심사기준인 2000만원 소득에는 연금소득 중 ‘공적연금’만 포함된다. 연금저축이나 퇴직연금계좌(IRP) 같은 사적연금은 제외되는데, 감사원에서 사적연금에 건보료를 부과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노인인구 비중 증가와 향후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고려할 때, 사적연금분까지 피부양자 심사에 포함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피부양자 박탈 조건은 또 있다. 재산세 과표 5억4000만원과 연소득 1000만원 초과다. 정부는 이 기준도 강화하려 했으나 부동산 급등으로 대상자가 급격히 늘어날 것을 우려해 현 조건을 유지했다.
조정익 신한라이프 상속증여연구소 수석연구원(세무사)는 “거주하고 있는 집 한 채의 재산세 과표가 5억40 00만원을 넘고 매달 국민연금을 84만원 이상 받으면 이 조건에 해당된다”면서 “이때 연소득이 1000만원이면 건보료 부담이 상당히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전증여로 명의 분산
‘금융소득 2000만원’의 허들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에도 관심이 쏠린다. 대표적인 수단이 예금과 적금 만기 시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70대 이자생활자 신 모 씨는 “정기예금을 여러 은행에 분산 예치해두고 1년 만기 때마다 한꺼번에 이자를 받아왔는데, 이번에는 만기를 다 다르게 설정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신 씨처럼 정기예금만 관리하다가, 생각지 못한 주식 배당금 등으로 기준을 넘어버리는 경우가 생기므로 주의해야 한다.
보험 업계는 ‘비과세 주머니’를 만들어둘 것을 제안한다. 조 수석연구원은 “보험사 연금보험은 명칭은 ‘연금’이지만, 연금 수령 시 연금소득이 아닌 이자소득으로 구분된다. 여기에 일정한 요건을 갖출 경우 비과세가 된다”면서 “이 같은 비과세 소득에 대해서는 건강보험료 피부양자 판정과 건강보험료 계산에서 제외되므로 노후자금 관리에 활용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하나은행 서울 을지로 본점 PB센터를 방문한 한 고객이 금융소득종합과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보험 연금상품으로 비과세를 인정받으려면 소득세법에 명시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월 적립식 상품의 경우 5년 이상 납입하고 10년을 유지해야 하고, 1인당 총 보험료는 월 150만원 미만이어야 한다. 일시납 상품은 1인당 1억원 한도로 10년 유지 조건이다. 종신형 연금상품은 55세 이후 연금 형태로 수령하되 사망 시 소멸하는 계약에 한한다.
현행 금융종합소득과세 기준과 소득 산정 방식이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이른바 ‘더 내고 더 받자’는 연금개혁 방향과도 상충되는 면이 있다.
특히 최근 고금리로 갑자기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고령자들에 대한 한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금융연구소 관계자는 “경제활동에 따른 소득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정당하고 2000만원 기준선에도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최근 금리 인상에 따른 일부 고령자의 추가 부담 대책은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금융소득 2000만~3000만원에 한해 60세 이상은 20%, 70세 이상은 30%, 80세 이상은 40% 이런 식으로 일정 금액을 감면해주는 방식을 고려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신찬옥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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